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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안토니오 모라비토

출연: 마르코 지알리니, 클라우디오 산타마리아, 예지 스투흐르, 플로니아 코델리

상영시간: 104분



스포일러 부분은 리뷰 후반부에 영역을 표시해두었으니 스포일링이 싫으신 분들은 표시해둔 부분 직전까지만 보시길 바랍니다. 영화 우리 빚을 사하여 주옵시고의 결말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이 리뷰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부분은 영화 초반 10분의 내용으로 전체적인 시놉시스이며, 두번째 부분은 영화의 중반부 내용과 함께 제가 느낀점입니다. 출처가 필요한 경우 [1] 과 같이 표기하고 가장 아래쪽에 출처를 기재하였습니다.




영화의 제목인 우리 빚을 사하여 주옵시고 Forgive us our debts 는 기독교의 주기도문에서 따온 문장입니다.(종교적인 영화는 아닙니다.) 주 기도문이 기록된 원래의 헬라어 문장에서의 '죄' 를 의미하는 단어는 '빚' 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기도 합니다.[1] 그래서 영문성경의 경우 New World Translation of the Holy Scriptures 버전은 해당 단어를 debts 로, New Living Translation 버전은 해당 단어를 sins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위키 백과 기준으로 가장 최신의 개정 판본 두개 인듯 합니다.) 당시 유대인 문화권에선 다른 사람에게 빚을 지는 것 자체가 큰 죄였나봅니다. 유대 문화에는 안식년, 희년이라는 특별한 해가 주기적으로 돌아오는데 이 해에 남에게 빚져서 노예가 된 자들을 해방시켜주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문화가 주기도문의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부분이 등장하게 된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냉장고의 음식을 옆집 이웃에게 맡기고 다음날 채권자를 찾아가는 귀도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서, 주인공인 귀도는 막대한 빚에 시달리며 전기 요금도 못 내어 냉장고의 음식을 옆집 이웃인 '교수'에게 맡길 정도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해고당하여 직장까지 잃은 그는 빚을 받아내려 자기를 쫓아다니는 추심인에게 시달리다 못해 채권자에게 찾아가 재발 자신을 고용해달라며 사정하게 됩니다. 내가 당신들에게 지독하게 시달려 봤으니 나도 당신들처럼 잘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요.



결국 귀도는 업계 최고라고 평가받는, 지독하게도 자기를 따라다니던 추심인 프랑코에게 일을 배우게 되며 본격적으로 내용이 진행되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입니다.



저의 감상 포인트는 "귀도가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해 다른 채무자의 돈을 받으러 다니면서 어떻게 괴로워하고 어떤 모습으로 변하가는가?" 와 "업계 최고 베테랑 추심인 프랑코는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그리고 왜 이 일을 하는가?" 였습니다.



프랑코가 말릴 정도로 채무자를 폭행하는 모습과 웨이터에게 갑질하는 모습의 귀도


귀도는 평범한 30대 남성입니다. 원래 다니던 IT 회사는 부도가 났고 경력을 살리기엔 나이가 애매했는지 경기가 안 좋았는지 다시 IT 회사에 취직하지 못 하고 물류 창고에서 지게차 기사로 일하다가 그마저도 해고 당해버립니다. 심지어 대출금도 많아서 결혼은 물론 연애도 포기한채 살고 있습니다. 저는 귀도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N포세대나 창업에 실패한 자영업자분들이 생각났습니다.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해 채권 추심일을 배우기 시작한 귀도는 일을 가르쳐주는 프랑코와 함께 다닙니다. 처음엔 괴로워 하다가도 일이 익숙해지며 귀도는 점점 프랑코처럼 변해갑니다. 프랑코가 아무 이유 없이 웨이트리스에게 갑질하던 모습을, 프랑코가 "너 같은 실패한 인생은 못 오는 레스토랑" 이라고 했던 식당에서 귀도가 똑같이 보여주며 프랑코처럼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심지어 채무자를 폭행하는 귀도의 잔인한 모습에 프랑코가 말리기도 하죠.



영화가 시작되며 프랑코는 출근할 때 아내와 입맞추며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다정하고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일터에서의 그는 채권자를 죽은 시체들이라고 표현하면서 수치심을 주어 모욕하고, 폭행하면서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빚을 받으러 다닙니다.



심지어 그는 교회에서 신부에게 고해를 할 때 부부싸움을 한 죄는 고백하지만 더 고백할 죄가 있냐는 신부의 물음에도 채권자에게 저지른 불법적인 일들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중반까지만해도 프랑코가 원래 잔인한 사람인지, 인간성을 포기하고 채무자에게 잔인하게 구는 것이 익숙해진 것인지, 아니면 속으로는 괴롭지만 겉으로는 괜찮은척 하며 그저 가족들을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 가장으로서 버티고 있을 뿐인지 알 수 없게 만듭니다.



저는 프랑코가 추심인 일이 내심 괴롭지만 괜찮은 척 하는, 책임감 있는 가장이며 일개 소시민이고, "스스로 용서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 는 신부의 말에도 죄를 전부 고백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용서할 수 없기 때문(혹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죽은 시체를 만나러 묘지에 찾아온 감정적으로 죽은 시체들


감독은 등장인물들을 통해 경제적으로 죽은 시체인 채무자처럼 되지 않기 위해 감정적으로 죽은 시체인 잔인한 추심인이 될 수 밖에 없는 프랑코와 채무자와 추심인을 오가며 딜레마에 빠지는 귀도를 보여줌으로써 어느쪽이던 시체가 되어야 하는 현대 사회를 표현하려 했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보면 좋은 영화: 악랄하게 돈을 받아내지만 이 영화와는 달리 웃겼다는 점에서 "비열한 거리(2006)"



[1] https://www.prosoriginalbible.com/biblestudyad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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