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미드 한니발에 대한 리뷰입니다. 스포일러적 요소는 있으나, 드라마 감상을 방해하는 영화 버전에는 없지만 드라마에는 있는 내용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전 영화 한니발 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한니발 렉터는 대중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연쇄살인마 캐릭터 중에 가장 우아한 살인마이기 때문입니다. 고풍스런 취향에 뛰어난 지식과 언변, 처세술로 사람을 꾀고 생김새마저 잘 생긴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죠. 연쇄 살인마가 된 계기마저 꽤나 슬프고 충격적이기 때문에 알고보면 불쌍한 인물이기도 합니다(물론 렉터의 살인은 옹호받을 수 없습니다).
간지가 폭발했습니다.
미드 한니발의 한니발 렉터는 매즈 미켈슨이 연기했습니다. 매즈 미켈슨의 매력은 이전 한니발 시즌1을 리뷰했던 글에 적었습니다. 매즈 미켈슨은 보면 볼수록 미중년입니다. 조지 클루니나 숀 코네리와는 다른 느낌이죠.
미드 한니발은 토마스 해리스 작가의 원작 소설 레드 드래곤을 각색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원작은 한니발이 처음부터 검거된 상태로 시작되지만 드라마에선 한니발이 FBI 수사관 윌 그레이엄의 정신과 주치의로써 윌의 다른 수사들을 간접적으로 돕고 있다는 점이 크게 다릅니다. 원작은 또 다른 연쇄 살인마인 이빨요정 프란시스 돌러하이드에 초점이 맞춰져서 진행되지만, 드라마는 프란시스를 쫓는 FBI 수사관 윌 그레이엄(과 그의 주변 인물들)의 심리묘사와 한니발의 프로파일링을 통한 수사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한니발 시즌1, 2, 3의 포스터
시즌 1은 윌이 연쇄 살인마 '체서 피크 리퍼' 를 잡기 위해 스스로 연쇄 살인마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며 '진짜 연쇄 살인마' 처럼 변해가는 과정을, 시즌 2와 3는 한니발을 잡기 위한 윌의 추적과 함께 또 다른 연쇄 살인마 '이빨 요정' 을 잡기 위해 한니발과 공조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시즌 1부터 3까지 시청률은 점점 떨어졌는데도 시청률에 엄청 민감한 미국 방송사중 하나인 NBC가 이 시리즈를 접지 않은 것은, NBC의 높으신 분이 한니발 렉터의 빠였거나 매즈 미켈슨의 빠였거나, 영상 연출 덕후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드라마 자체는 재밌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래에 설명하는 이유들 때문에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상입니다.
드라마 한니발은 시리즈 내내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꽤나 추상적인 이미지들이나 영상미를 추구하는 장면들이 들어갑니다. 저는 한니발에 나오는 연출들이 꽤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이었던 장면은 시신으로 인간의 눈을 표현한 끔찍한 변태적 예술을 페이드아웃 하는 장면과 점점 한니발을 닮아가며 살인마처럼 변해가는 윌을 표현하기 위해 한니발의 얼굴 위에 윌의 얼굴을 포개어 왼쪽은 윌의 얼굴이지만 오른쪽은 한니발의 얼굴을 보여줬던 장면입니다.
그 외에도 살인마처럼 변해가는 윌의 내면속 사악함을 묘사하는 윌의 상상속 사슴뿔을 가진 검은 사람이나, 그와 동일시 되어가는 뿔 위에 누운 윌의 모습(이미지 오른쪽 윌의 머리 위를 자세히 보면 순록뿔이 있습니다),
한니발이 타락한 요리라고 표현하는 회색머리멧새 구이의 조리과정에서의 클로즈업 장면, 타락한 연쇄 살인마 한니발과 타락해가는 윌을 묘사한 듯한 두마리의 회색머리멧새 구이의 모습등 시즌 내내 매 편마다 정적이고 극의 흐름을 지루하게 만드는 예술적 장면들이 나옵니다. 화면도 대체로 어두워서 더 졸립게 만들죠. 밝은 장면은 대부분 차가운 눈밭이 전부일 정도로 극의 구성이 우중충하고 쓸쓸합니다.
드라마 한니발은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의 영상입니다. 재미 없다는 얘깁니다. 저는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면 '와 쩐다' 라고 감탄하고 몇시간씩 죽치고 앉아서 그림을 보긴 보지만, 그게 재밌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저는 그렇습니다.
정리하자면 한니발은 영상미 자체는 쩔어주는데 드라마 자체는 지루합니다. 저는 미술관에서 비디오 아트 감상한다는 느낌으로 봤습니다. 침대에 누우면 잠이 잘 안와서 힘들었는데 꽤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재미로 보기 보다는 영상기법이나 연출, 영화 미술 등을 공부하기 위해 보길 추천합니다.
같이 보면 좋은 영화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좋았던 영화 향수, 한니발 렉터의 매력덕에 왜 시리즈가 계속 나올 수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영화 한니발 시리즈